내 안의 두려움

무의식의 두려움

어렸을 때 나는, 책 상 밑에 숨어서 잠을 청하곤 하였다. 그리고, 잠이 들때까지 ‘전쟁이 나면 어떻하지?’ 라는 걱정으로 두려움에 떨며 잠을 이루었다.

그 때는 몰랐었다. 왜그렇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지.

나에 대한 참자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두려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나의 무의식 안에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 캄보디아에서는 ‘킬링필드’로 알려진 크메르 루즈 정권의 대학살이 일어났었다. 이 때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남편과 아이들이 잔인하게 살해 당하고 고문받는 참상을 강제로 목격해야 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여성들은 난민의 자격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등지로 이주하여 정착촌을 이루고 살아가게 되었다.

1980년대, 이 지역 안과 병원에 수백명의 캄보디아 중년 여성들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찾아왔다. 정밀 검사 결과 안과 의사들이 눈의 각막, 수정체, 망막, 시신경, 뇌의 시가 중추까지 정밀 검사했지만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100% 정상이었다.

하지만 환자들은 실제로 빛조차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심각한 시력 상실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의학 및 정신분석학에서는 이 현상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결합된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 히스테리성 실명)로 진단하였다.

인간의 뇌와 무의식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목격했을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보는 행위 자체를 거부”해 버린다.

당시 한 피해 여성은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서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세상의 끔찍한 것들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즉, 뇌의 시각 정보 처리 스위치를 무의식 스스로 꺼버림으로써 끔찍한 기억과 현실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극단적인 마음의 자기 방어 기제였던 셈이다.

한국은 6.25사변 이라는 한국전쟁이 있다. 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무의식에 공포, 두려움, 불안이 내재 되어 있다. 나의 시어머님 또한 6.25전쟁 시에 눈 앞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어렸을 때 경험한 불안, 두려움이 어머니의 무의식에서는 큰소리, 떠드는 소리, 폭언 같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 했고 결국에는 스스로가 소리를 차단, 지금의 청력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후성유전학에 의하면, DNA 염기서열(글자)이 바뀌지 않아도, 어떤 유전자를 켜고(ON) 끌지(OFF)를 결정하는 ‘후성유전학적 표지(메틸화 등)’가 감정에 의해 변한다. 조상이 극심한 위협을 겪으면, 유전체는 후손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계 태세를 높여라”라는 스위치를 켜둔다. 이 스위치가 켜진 채 태어난 3대 후손은 별다른 트라우마를 겪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편도체(공포 반응 부위)가 민감하거나 스트레스 조절 호르몬 분비가 과도하여, 이유 없는 불안, 우울, 과도한 긴장감을 느끼기 쉽다.

대표적인 의학·과학적 연구 사례로

  1.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 후손 (레이철 예후다 박사 연구) :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자녀와 손주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스트레스 조절 유전자(FKBP5)의 메틸화 변이가 후손에게도 동일하게 관찰되었다.
  2. 네덜란드 겨울 기근(1944~1945) 연구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극심한 굶주림을 겪은 임산부의 자녀뿐 아니라, 그 손주 세대까지 대사 질환과 정신적 스트레스 취약성이 높게 나타났다.
  3. 후각 트라우마 쥐 실험 (케리 레슬러 박사 연구) : 할아버지 쥐에게 특정 냄새와 함께 전기 충격을 주어 공포를 학습시키자, 그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자식 쥐와 손자 쥐(3대)까지 그 냄새만 맡으면 극심한 공포 반응을 보였다. 정자의 후성유전적 변화가 원인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 했던 분이셨고 인천상륙작전에서 총상을 입었던 경험이 있었다. 아버지의 극심한 공포가 나의 DNA안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들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우리는 조상의 상처에 묶인 숙명론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DNA 염기서열과 달리, 후성유전학적 스위치는 가소성(변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 내가 내면의 상처와 무의식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고(의식화),
  • 명상, 안전한 환경, 심리적 치유, 새로운 긍정적 믿음을 훈련하면,
  • 켜져 있던 불안 유전자의 스위치가 다시 꺼짐(OFF) 상태로 재조정된다.

결국 내 안에서 불쑥 솟구치는 원인 모를 불안이나 두려움 중 일부는 내 잘못이 아니라 이전 세대로부터 건네받은 생존의 흔적일 수 있으며, 이를 온전히 자각하고 치유할 때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글쓴이

goldage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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